가수 김완선이 13년간의 활동 수입에 대한 정산을 받지 못했던 사실이 재조명 됐습니다.
김완선은 1986년 데뷔 후 1998년까지 자신의 매니저 역할을 했던 이모로부터 정산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리듬 속에 그 춤을' '가장무도회' 등 있습니다.
또한 대졸 초임 월급 기준 30만 원이던 1980년대 그의 수입이 한 달 평균 수천만 원 이상이었다고 전해졌습니다.
지난 3일, 채널A 예능프로그램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선 오는 10일 방송될 김완선의 사연이 예고편으로 공개됐습니다. 짧게 공개된 예고편에는 김완선과 그의 동생이 함께 출연했습니다.
고요해진 스튜디오의 적막한 분위기 속, 김완선의 동생은 "답답합니다. (언니가) 매사에 의욕이 부족하다"라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이에 김완선은 "'왜 정산을 안 해주냐'는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며 "나는 약간 그냥 로봇 같은 존재"라고 회상했습니다.
김완선이 13년간 수익을 정산받지 못한 사연을 공개할 것이라는 해당 예고편이 공개된 후,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사실 김완선은 1986년 데뷔 후 1998년까지 자신의 매니저 역할을 했던 이모로부터 정산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자신의 정산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한 김완선은 매니저였던 이모와 결별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활동했던 당시 그의 히트곡으로는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리듬 속에 그 춤을' '가장무도회' 등 있습니다.
김완선의 수입 미정산 사연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의 가슴 시린 사연은 시간을 거슬러 2012년으로 올라갑니다.
2012년 3월 방송된 KBS 2TV '여유만만'에는 김완선과 아버지 김성남 씨, 어머니 한수자 씨가 함께 출연했습니다. 이날 전성기 시절 최고의 여가수로 군림했던 김완선은 자신의 수입을 밝힌 바 있습니다.
해당 방송의 MC였던 조영구가 "수입의 규모는 어땠느냐?"라고 묻자 김완선은 "그때 집이 2천만 원~3천만 원이면 살 수 있었습니다. 내 한 달 수입으로 아파트 2채~3채 정도는 살 수 있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그가 초창기 활동했던 당시 일반적인 한달 수입은 30만 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김완선의 수입은 현재 가치와 빗대어 대략적으로 계산해 봤을 때 연평균 100억 원 이상이었다는 것.
다시 돌아와, MC 조영구의 "톱 가수가 되고 나서 부모님께 해 드린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엔 "마음으로는 다 해드리고 싶었는데 형편이 안 됐습니다. 활동하면서 월급을 타본 적이 없습니다. 계약도 한 적 없다"라고 말해 출연진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모가 매니저를 담당했다"며 "'이모니까 알아서 주겠지'라고 생각했고, 그 돈으로 사치를 하거나 이상한데 썼으면 속상했을 텐데 당시 이모부가 사업을 했고 부도가 나며 돈을 못 받았다"라고 속마음을 공개했습니다.
이후 10여년이 지난 2022년 11월 30일, 채널A '행복한 아침'에서는 가수 겸 배우 이승기가 소속사 훅엔터테인먼트 정산 문제로 소속사와 갈등을 겪고 있던 상황 속, 가수 김완선의 정산금과 관련한 사실을 재조명했습니다.
해당 방송에선 '매니저 때문에 울고 웃은 스타들'이라는 주제로 이승기에 이어 김완선의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홍종선 기자는 "이모도 사계절을 옷 두 벌로 나며 돈 한 푼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모부 사업 빚을 갚는데 고스란히 쓰였습니다. 이모부가 사업을 한다며 14억 원을 탕진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최정아 기자는 수익 배분 문제 외에 있던 갈등에 대해 "춤과 음악에 김완선의 선택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모두 이모의 안목이었다"며 활동하는데 김완선의 의지가 없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홍 기자는 "이모가 아니더라도 매니저 말이라면 복종해야 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있었다"고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알려진 바로, 김완선의 이모 한백희 씨는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편, 김완선은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선 섹시 콘셉트를 정형화시킨 대표적 가수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최초이자 최고의 여성 댄스 가수라 해주셔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바 있습니다. 특히 댄스 실력으로는 대한민국 여가수 역사상 최고라는 찬사를 남기기에도 아쉬울 정도.
김완선의 대표적인 노래를 떠올린다면 단연 '나홀로 뜰앞에서' '리듬 속의 그 춤을'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가장무도회'를 통해선 김완선의 5집이 1991년 한 해를 장식할 정도로 팔려나갔으며, 그 덕에 100만 장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강렬한 표정 연기와 파격적인 무대매너만큼 시대를 앞서간 패션감각으로도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그의 과거 화보나 무대 의상만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
김완선은 1969년 생으로 만 53세입니다. 인순이의 매니저였던 이모 고(故) 한백희 씨를 통해 1983년 인순이와 리듬터치의 백댄서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후, 1986년 '독집 제1집'을 발표하며 데뷔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으로 17세였습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강렬한 눈빛은 1980년대의 대중들에겐 이질적으로 보였다는 평이 있으나, 시대를 앞서간 패션 감각이나 무대매너 등은 뭇 여성들의 워너 비였다고도 전해집니다.
1990년대 초반은 김완선이 부동의 원탑인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선희, 강수지 등 스타덤에 오른 여자 가수들이 있었으나, 김완선의 매력 포인트와 인기성은 따라가지 못했을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9년엔 에버랜드와의 콜라보로 제작된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2019'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습니다. 유튜브 조회수 250만에 육박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2020년 히든싱어 6에 10번째 원조가수로서도 출연했습니다.
최근엔 SBS '불타는 청춘' 등 방송활동과 꾸준한 SNS 소통,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근황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김완선의 곡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무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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