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꼬꼬무) 23회에서 1999년 인천 인현동에서 일어난 화재 참사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사건 개요
1999년 10월 30일 오후 6시 55분에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 83번 길 10에 소재한 호프집에서 발생한 화재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세 번째로 인명피해가 컸던 화재인데요. 당시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일반적으로는 2층에 위치해있던 호프집이었으니 큰 인명피해 없이 사건이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업소 지배인은 문을 막아서고 "돈을 내고 가라"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그 학생들이 탈출을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폭발 소리와 함께 유독가스가 내부를 뒤덮치면서 탈출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어른의 탐욕 때문에 벌어진 참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창문은 인테리어를 위해 막아둔 통유리이며 외부는 간판 효과를 내기 위해 베니어합판으로 막아놓은 상태라 창을 깨고 외부로 탈출을 할 수 도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화재는 30분 만에 진압되었으나 2층 라이브 호프집에서 탈출하지 못한 많은 학생들이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사건 원인
불이 나기 전 당시 지하 노래방은 수리공사 중이었고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10대들이 불장난을 하던 중 불이 붙어버렸지만 남은 화염과 유독가스가 지상 입구에서 벽을 타고 올라가 2층과 3층까지 화재가 발생하는 대참 가사 일어났던 것입니다.
노래방에서 공사 인부들이 천장에 설치된 확산형 소화기 15개가량을 모두 제거했던 것이 큰 원인이었는데요. 설상가상으로 2층 호프집 인테리어가 인화성 물질인 우레탄 등으로 제작되어있어 화재를 더욱 키웠다고 합니다.
피해규모
이날 호프집에는 학교 축제로 고교생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화재가 발생하자 호프집주인은 학생들이 못 나가게 막았음에도 그만 아는 비상구를 통해 건물을 빠져나왔기 때문에 발생한 사망자 57명, 부상자 79명이 되었습니다.
당시 출동했던 소방사 말로는 정말로 맨 처음에 사람이 쓰러져 있을 때 한 두 명이겠지 했지만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좁은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고, 또 그 아랫사람이 있었고, 또 그 밑에 사람이 있었다고 당시의 참혹한 장면을 묘사해주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일으킨 대참사, 과연 그가 자수 후 5년간 교도소에 복역하여 출소하였다고 모든 죗값을 다 치르게 된 것일까요? 이제 저희는 그가 마땅한 죗값을 치렀기 때문에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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