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젬 바둑 55연승, 외톨이 정체는 박정환 9단 (+이세돌 알파고 대결)

더글로리에 나온 문동은의 바둑 장면과 이세돌 사진

넷플릭스 시리즈가 최근 쏘아 올린 주제는 참 다양했다. 학교폭력을 고발하는 내용의 '더 글로리', 지상파 방송국의 아카이브를 이용한 다큐멘터리 작품 등 꽤나 오랫동안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죠.

이러한 상황 속, 그동안 마니아층에만 관심이 오가거나 AI 기술의 발전을 논할 때 종종 등장하던 '바둑'의 소재가 최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올라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둑을 떠올리면 14년 전 인터넷 바둑을 휩쓸었던 사건이 가장 먼저 회자된다. 물론 '알파고'의 등장보다 더 큰 이슈가 될 순 없으나, 2009년 1월부터 한국 바둑 기사 랭킹이 도입된 이후 꽤나 재밌는 사건이었으니까요.

타이젬 온라인 바둑 플랫폼 배너 사진

사실, 2000년대 초반은 인터넷 바둑이 흥행을 했다. 요즘처럼 화려한 액션을 가진 이렇다 할 온라인 게임도 마땅치 않던 시대에 마우스 클릭 한 번에 이뤄지는 '침묵 속의 숨 가쁜 혈투'는 많은 네티즌들을 열광하게도 했었죠. 

어찌 됐든 2009년 인터넷 바둑에 포진돼 있던 다수의 상위 랭커는 프로 기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타이젬'이라는 온라인 바둑 게임의 최상위 랭커는 중국 기사들이 포진해있었죠.

그러다 한 유저가 등장한다. 닉네임은 '외톨이'였다. 당시 그는 타이젬 랭킹 1위였던 lxlx에게 대국을 신청했죠. 0승 0패의 엄청난 전적을 가지고 말이다.

바둑은 14분 만에 불계로 끝나게 됐다. 승리는 '외톨이'가 가져갔다. 소식을 접한 '타이젬' 바둑의 중국 기사들은 외톨이를 꺾기 위해 대국 러쉬에 들어갔죠. 결과는 외톨이의 15전 15승.

타이젬 바둑에서 55연승을 기록한 회원 외톨이 프로필 사진

홀연히 승리를 거머쥔 외톨이는 다음 날 1700여 명의 관전자 앞에서 40여 판을 이어간다. 충격적이게도 5시간 동안 외톨이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연승을 해버렸다. 한국 바둑계는 물론 중국 바둑계도 공포로 물들었죠. 아마도 몇 해전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알파고와 바둑을 치룬 당시 이세돌의 기자회견 사진

한,중 네티즌은 전부 '외톨이'가 누구냐며 궁금해하다가 휴직계를 내고 대국이 없었던 '이세돌'을 지목하기에 이릅니다.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이세돌이 인터넷상에서 프로기사들을 무참히 짓눌렀다며 결론을 내버렸죠. 

하지만 복귀 후 바둑TV와의 인터뷰를 가진 이세돌의 입장은 단호했다. "저는 아니다."

외톨이의 정체는 4년이 흐른 2013년 알려졌다. 당시엔 제10회 동양증권배 타이젬 왕중왕전 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사람은 본인의 이름을 밝히도록 룰이 바뀌었던 사실이 있다.

제10회 동양 증권배 타이젬 왕중왕전 바둑 대회 일정

이 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외톨이'도 정체를 밝힐 수밖에 없었죠. 그의 이름은 프로기사 박정환이었다. 2006년 13살에 프로기사가 됐던 것을 염두에 두면, 16살 무렵 전 세계 인터넷바둑 고수들을 상대로 55연승을 한 셈이죠. 지금까지도 현실판 고스트바둑왕의 일화로 유명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박정환 9단의 프로 바둑기사가 바둑을 두는 모습

무엇보다도 최근 유아인을 주연으로 한 넷플릭스 '승부'의 공개가 잠정 연기되면서 많은 바둑팬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사제지간으로 유명했던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서사가 공개되지 못해 아쉽다는 것이 그 이유죠.

그렇지만, 바둑을 떠올린 이들이라면 '더 글로리'의 문동은의 몇몇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은 바둑을 매개체로 가해자 박연진(임지연)과 남편 하도영(정성영)에 접근한다. 

드라마 속 문동은은 하도영에게 "침묵 속에서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게 좋아서요. 상대가 공들여 지은 집을 무너뜨려야 이기는 것도 마음에 들고..."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는 20~30대 청년들이 자주 보인다고 하죠.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출연진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

그만큼 드라마 '더 글로리' 곳곳에는 바둑과 관련된 요소가 꽤나 많이 녹아있었다. 문동은의 복수를 상징하는 매개체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와 관련해 유튜브 바둑 채널을 운영하는 조연우 2단은 '문동은'의 실력을 두고 "드라마의 몇몇 장면을 통해 문동은이 '아마 5단급' 실력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더글로리 시즌2 스틸 컷에서도 문동은과 하도영의 대국 장면 속 바둑판이 자세히 비치기도 했는데. 문동은은 흑돌, 하도영은 백돌을 쥐고 있었다. 

동은이 거대한 백집을 차례로 부수고 있는 장면을 두고 '프로연우' 채널 조연우 2단은 "문동은이 두는 수는 '응수타진'이며, 상대방에게 '너 여기서 어떻게 받을래?'하고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연우 2단의 유튜브 바둑 해설 영상 장면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백집이 다 박살 났다. 상대가 정성껏 지은 집을 산산이 무너뜨린 것이다. 전 이 장면을 보며 동은이가 이런 복수를 보여주겠구나, 더 기대가 됐다"고 전한 바 있다. 

드라마가 모두 공개된 현재로선 더 글로리에서 보인 문동은의 대국 장면과, 주여정과 하도영의 대국 장면으로 바둑 인기가 꽤 높아졌다고 한다. 한국기원은 다양한 방법으로 바둑인 양성과 홍보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죠. 

사단법인 한국 기원의 건물 정면 사진

대학교에서도 바둑 강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하는데.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바둑의 장점에 대해 "우선 집중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성인들은 바둑을 통해 대인 관계도 넓힐 수 있고, 일종의 '수 싸움'에도 자신이 생겨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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